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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헌(古文獻)에는 산삼이 인삼으로 기록되어 있스며 인삼(산삼)이 약명(藥名)으로 기록된 최초의 문헌은 중국 전한(前漢) 원제(元帝:B.C 48~33년)시대에 사유(史游)가 저술한 급취장(急就章)으로서 인삼(산삼)을 "參"으로 기록하였으며 후한(後漢) 시대 건안년간(建安年間:A.D 196~220년)에 장중경(張仲景)이 저술한 상한론(傷寒論)에는 인삼(산삼)을 배합한 21개의 약처방이 기재되어 있는데 이는 인삼(산삼)을 약의 조제(調劑)에 이용한 최초의 기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에 이미 인삼(산삼)이 이용되었을 뿐 아니라 왕실에서는 중국에 예물로 보내었으며 또한 중국과 많은 교역을 하였으나 불행이도 이에 관한 기록이 우리나라의 사료(史料)나 문적(文籍)에는 없으며 중국의 사료와 문적을 통해서만 고증할 수 밖에 없다.
이순(李珣)이 저술한 해약본초(海藥本草)에는 "신라국에서 공물로 바치는 인삼(산삼)은 사람과 비슷하며 수족이 있다. (중략)중국 사주의 인삼(산삼)은 소형이며 아무 가치도 없다" 라고 했으며 양(梁)나라의 도홍경(陶弘景)이 저술한 명의별록(名醫別錄)에는 백제(百濟)가 무녕왕(武寧王) 12년(512년)에 양(梁)의 무제(武帝)에게 인삼(산삼)을 예물로 보내었음을 기록하고 있스며, 또한 고구려인(高句麗人)이 저술하였다는 인삼찬(人蔘讚)도 이 책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당대(唐代)의 책부원구(冊府元龜)에는 신라 진평왕(眞平王)이 당 태종 1년(627)에 왕사(王使)를 통하여 인삼(산삼)을 예물로 보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밖에도 삼국시대의 인삼(산삼)에 관한 중국의 사료와 문적은 많으며 특히 명대(明代) 이시진(李時珍)이 저술한 본초강목(本草綱目:1578년)에는 삼국시대의 인삼(산삼)에 관하여 자세하고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다.

본초강목 중의 몇 구절을 인용하면 "俗乃重百濟者 形細而堅白 (중략) 次用高麗者 高麗卽是遼東 形大而虛軟 不及百濟 "라 하여 삼국의 인삼(산삼)의 특징을 자세하게 설명하였고, 또한 "今所用者 階是遼參 其高麗百濟新羅三國" 이라고 기술하였는데 이는 당시 우리나라에서 산출되는 인삼(산삼)중에 많은 량이 중국에 도입되어 약용으로 사용되었다는 기록으로서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가 인삼(산삼)의 주산지였음을 입증한다 하겠다.

우리나라의 문헌중에서 인삼(산삼)에 관한 기록은 고려시대(高麗時代)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등에 여러 기록이 있스며 조선시대에 와서는 이조실록(李朝實錄)을 중심으로 인삼(산삼)에 관한 여러가지 사실들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인삼(산삼)의 부족 현상이 고려 말엽 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중국으로부터의 요구와 왕실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관의 주구가 혹심해지고, 할당량을 조달하기 어렵게 된 산삼 산지의 지방민들은 고향을 떠나는 사태마저 빈번하였다 한다.

따라서 이 시기에 즈음하여 인삼의 재배를 시도하였을 가능성은 충분하며 1578년에 저술된 이시진(李時珍)의 본초강목(本草綱目) 중에 "亦可收子於十月下種如種菜法"이라 하여 당시 우리나라에서 인삼이 재배되고 있었음을 명백히 기술하였다.

그런데 문장중에 "於十月下種"이라는 표현은 음력 10월(양력 11월) 중에 인삼종자를 파종 하였음을 뜻하는데 인삼 종자의 성숙기가 양력 7월 하순임을 감안할 때 채종기와 파종기간에 약 100일 이상 공백기간이 발생한다.

따라서 인삼 종자의 채종기와 음력 10월의 파종기 사이에 존재하는 공백기간은 종자처리 즉 개갑(開匣)을 실시하였던 기간으로 추정되며 1500년대에는 이미 인삼 종자를 개갑 처리하여 파종할 정도로 인삼 재배 기술이 발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삼의 재배가 시도된 후 종자를 개갑 처리 하여 파종할 정도로 재배 기술이 발전되고 또한 인삼 재배가 일반화되어 중국에 알려지게 되기까지에는 최소한 100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의 인삼 재배는 늦어도 1300년대 후반 즉 고려말 경에는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영조(英祖) 원년에 송도(松都)의 삼농민들이 일복식삼영농(日覆式蔘營農)을 크게 일으켰다는 기록으로 보아 영조대에는 이미 기술적으로 크게 발전되고 전국적으로 일반화되었던 시기로 보이며, 정조(正祖)14년의 기록에는 경상(慶尙), 원춘(元春) 양도의 봉진물 중에 가삼(家蔘)이 많다고 하였는데 가삼이란 재배 인삼을 뜻하며 이는 당시에 인삼재배가 전국적으로 성행하였음을 입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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